
캐나다은행이 지난주 킹 찰스 3세를 담은 새 세로형 20달러 지폐를 공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1935년 첫 발행 이후 91년간 20달러 지폐 도안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연도별로 되짚어 봅니다.
캐나다은행이 킹 찰스 3세를 담은 새 세로형 20달러 지폐를 공개했을 때, 모두가 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한 명의 영국 군주가 화폐에 등장한다는 이유로 많은 캐나다인이 “못생겼다”, “별로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20달러 지폐는 1935년 처음 발행된 이후 여러 차례 모습을 바꿔 왔습니다. 그 한 해 전,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은행에 지폐를 발행할 독점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935년 3월 11일 캐나다은행이 업무를 시작하며 첫 지폐 시리즈를 냈는데, 여기에는 조지 5세, 메리 공주, 요크 공작 앨버트 등 영국 왕실 인물이 담겼습니다. 당시 캐나다는 여러 면에서 자치를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영국 자치령이었고, 국왕이 캐나다의 국가원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그동안 20달러가 입어 온 여러 도안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1. 1935년

당시 여덟 살이던 엘리자베스 공주(훗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가 캐나다은행이 발행한 첫 20달러 지폐의 한 면을 장식했습니다. 지폐는 은은한 분홍빛을 띠었고, 뒷면에는 “곡물을 시험하다(Testing the Grain)”라는 제목의 수확 그림이 담겼습니다. 뒷면 인물은 솔방울을 얹은 지팡이인 티르소스(thyrsus)를 들고 있었는데, 캐나다은행 박물관에 따르면 티르소스는 번영과 풍요, 즐거움을 상징했습니다. 당시 엘리자베스는 영국 왕위 계승 서열 3위였고, 지폐 속 곱슬머리는 아역 스타 셜리 템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2. 1937년

첫 시리즈가 나온 뒤, 정부는 캐나다은행법을 크게 바꿔 이후 모든 지폐를 영어와 프랑스어 두 언어로 발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1937년, 거의 모든 액면에 조지 6세의 초상을 담은 새 도안이 나왔습니다. 초상을 가운데로 옮겨 두 언어 문구와 잘 어울리는 대칭 배치를 만들었습니다. 또 액면마다 고유한 색을 정해, 5달러는 파랑, 20달러는 초록을 썼습니다. 20달러 뒷면에는 또 다른 수확 그림이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초록색과 흔히 연결되는 풍요를 상징했습니다.
3. 1954년

거의 20년이 지나 도안이 진부해지자, 캐나다 화가 찰스 컴포트가 다음 시리즈 설계를 맡았습니다. 젊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모든 액면 앞면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여왕의 귀 뒤 곱슬머리에서 악마의 얼굴이 보인다고 주장했고, 캐나다은행 박물관에 따르면 이 사실을 조판공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반대 면에는 캐나다은행이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캐나다 풍경을 원해, 20달러에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산맥 중 하나인 로렌시아 산맥(Laurentian Mountains)이 담겼습니다.
4. 1969년

많은 이들이 “다색(multicoloured)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입니다. 새 시리즈 지폐는 훨씬 다양한 색을 담았습니다. 캐나다 지폐에 “이 지폐는 법정 화폐(This note is legal tender)”라는 문구가 처음 들어간 것도 이때로, 이전의 “요구 시 소지인에게 지급한다(will pay to the bearer on demand)”는 문구를 대체했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여러 캐나다 총리가 등장했지만, 20달러는 계속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담았습니다. 뒷면에는 캐나다 태평양 철도(CPR) 컬렉션 사진을 바탕으로 알버타 ‘열 봉우리 계곡’의 모레인 호수(Moraine Lake)가 실렸습니다.
5. 1986년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폐의 보안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1986년 시리즈에는 기울이면 색이 바뀌고 스캐너에는 단일한 어두운 색으로 보이는 반사 보안 패치가 도입돼 복제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20달러에는 2달러 지폐에도 쓰인 ‘다웃파이어’ 엘리자베스 2세 조각 초상과 함께 국회도서관 도안이 담겼습니다. 뒷면에는 한 쌍의 아비새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캐나다은행은 원래 아비새를 1달러 지폐에 넣으려 했으나, 1달러 동전인 루니(loonie)가 도입되며 그 계획이 무산돼 20달러로 옮겨졌습니다.
6. 2001년

캐나다은행이 처음으로 전부 컴퓨터로 설계한 지폐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이때 캐나다인은 지폐 뒷면에 담길 주제를 고르는 데 의견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 20달러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국회의사당 센터블록 입구를 그린 삽화가 담겼습니다. 뒷면에는 ‘예술과 문화(Arts and Culture)’ 주제가 표현됐고, 가브리엘 루아의 소설 ‘비밀의 산(La Montagne Secrète)’의 한 구절이 함께 실렸습니다.
7. 2011년

호주에 이어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폐를 폴리머(polymer)로 인쇄하는 국가가 됐습니다. 폴리머는 내구성이 좋지만 값이 비싼 소재로, 위조를 막기 위해 쓰였습니다. 투명 창과 미세 인쇄, 홀로그램이 보안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이 20달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색을 도입했습니다. 앞면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뒷면에는 1917년 비미 능선 전투 현장에 세워진 캐나다 국립 비미 기념비가 담겼습니다. 기념비 뒤로 캐나다 국기가 보이고, 양옆에는 양귀비 이미지가 배치됐습니다.
캐나다은행에 따르면 킹 찰스를 담은 새 세로형 20달러 지폐는 2027년 2월 말에 유통에 들어갑니다. 그 뒤로는 캐나다의 상징적 인물인 테리 폭스(Terry Fox)를 담은 새 세로형 5달러 지폐가 나올 예정입니다.
지폐 속 인물과 그림은 그 시대 캐나다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줍니다. 오랫동안 영국 군주를 담아 온 20달러가 이제 킹 찰스 3세로 이어지는 것을 두고 반응이 엇갈리는 것도, 캐나다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캐나다에 정착한 한인에게도 매일 쓰는 지폐 한 장에 담긴 이런 배경을 알아 두면, 현지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원문: Daily H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