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캐나다 은행들이 미국 투자자에게 모기지 담보 채권을 다시 팔 수 있도록 공시 의무를 면제해줬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은 캐나다 감독기관이 부풀려진 감정평가를 두고 은행들과 부딪친 지 불과 몇 달 만에 나왔고, 중앙은행이 이미 경고한 위험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먼저 배경을 짚어보겠습니다. 미국 SEC는 2026년 5월 12일, 캐나다 커버드본드(covered bond) 발행사에 ‘무조치(no-action)’ 예외를 조용히 부여했습니다. 이로써 캐나다 은행들은 미국의 비슷한 상품에 요구되는 ‘대출 단위(loan-level)’ 공시 없이도 미국 투자자에게 커버드본드를 팔 수 있게 됐습니다.
채권은 자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빚 증서입니다. 발행자가 투자자에게 채권을 팔고 그 대가로 이자(수익률)를 줍니다. 수익률은 물가와 유동성, 위험 같은 요소를 반영합니다. 위험이 크면 수익률이 높아지고, 위험이 낮으면 더 싸게 자금을 빌릴 수 있습니다. 커버드본드는 은행이 자기 장부에 그대로 두는, 보험에 들지 않은 모기지 묶음을 담보로 삼습니다. 발행사가 돈을 못 갚으면 투자자는 은행과 기초 모기지 양쪽에 청구할 수 있어(이중 상환청구권) 위험이 줄고, 그만큼 은행은 더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채권을 누가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누가 정하느냐입니다. 이 점을 두고 미국과 캐나다 규제당국은 2014년부터 마찰을 빚어 왔습니다.
미국의 투명성 규정이 캐나다 발행사를 막았다
SEC는 2014년 8월 자산유동화증권(ABS)의 공시 요건을 강화하는 Regulation AB II를 도입했습니다. 이 개편으로 자산 단위 보고가 표준이 됐고, 투자자는 발행사가 요약해주는 정보에 기대는 대신 대출 하나하나의 세부 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투자자가 직접 대출별로, 감정평가별로 위험을 다시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규정은 대출 단위 보고를 하지 않는 캐나다 CMHC 체계와 부딪쳤습니다. 두 체계를 맞추기 어려워지자 캐나다 발행사들은 발을 뺐고, 2016년 중반에는 은행을 포함한 주요 캐나다 발행사들이 SEC 등록을 소멸시켰습니다.
캐나다 커버드본드가 미국 예외를 얻다
2026년 5월 12일, SEC는 캐나다 커버드본드 발행사를 위한 ‘무조치’ 초안을 조용히 내놨습니다. 대출 단위 정보를 요구하는 대신, CMHC 투자자 보고서의 요약 수준 공시만으로도 되도록 한 것입니다. 캐나다 발행사들은 다시 미국 투자자에게 커버드본드를 팔 수 있게 됐고, 투자자 범위도 기관을 넘어 개인(리테일)과 채권형 펀드로 넓어졌습니다.
이는 더 많은 자금이 들어올 문을 여는 동시에, SEC가 외국 규제를 대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SEC가 자국에서 요구하는 세밀한 투명성 대신 캐나다의 요약 공시를 받아들인 셈이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에는 캐나다 규제에 대한 신뢰가 있어 이런 양보를 정당화하기 쉬웠지만, 그사이 캐나다 모기지 시장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캐나다 모기지 위험은 내부에서 자라고 있다
2020년 저금리 붐 때 집값은 어디서나 올랐지만, 캐나다만큼 급등한 곳은 드물었습니다. 특히 토론토 같은 핵심 시장에서는 선분양(pre-construction) 물량의 약 80%를 투기적 투자자가 사들였습니다. 상당수는 잔금을 치를 자금이 없었지만, 완공 전에 되팔 계획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애초 산 가격은 더 비싸게 사줄 다음 사람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마르면서 투기 세력은 어쩔 수 없이 잔금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값이 떨어지면서 이들의 자기자본은 상당 부분, 어떤 경우엔 전부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신축 모기지는 최소 20%의 자기자본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매자는 더 많은 현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은행 감독기관이 부풀린 감정평가를 경고했다
캐나다 은행들은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일괄 감정평가(blanket appraisal)’입니다. 이는 프로젝트 단위로, 공사가 끝나기 여러 해 전에 이뤄진 감정평가에 기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행들은 완공 시점의 낮아진 실제 시세 대신 원래 계약 가격을 기준으로 대출을 승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모하게 들린다면, 캐나다 은행 감독기관(OSFI)도 그렇게 봤습니다. OSFI는 2025년 중반 처음으로 이 관행을 비판하며, 오래된(stale) 감정평가를 쓰면 대출액보다 값이 낮은 물건이 담보로 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올해 초 OSFI가 제공한 기록을 보면 이 우려는 더 커졌습니다. 2025년 4분기에는 은행들과의 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고 점점 대립적으로 흘렀습니다. 한 사례에서 OSFI는 은행이 구매자에게 자금을 보증한 방식이 은행법의 대출 대비 담보가치(LTV) 한도를 위반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런 모기지들이 국내외 투자자에게 팔리는 증권의 담보로 쓰인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번 조치는 한국 투자자와 이민자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캐나다 은행이 미국에서 자금을 더 쉽게 조달하면 모기지 자금 공급이 늘어날 수 있지만, 그 담보가 되는 모기지의 위험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시장 전체가 취약해집니다. 특히 집값 조정이 이어지는 토론토·밴쿠버에서 선분양 물건을 산 실수요자라면, 감정평가와 잔금 조건이 어떻게 잡혀 있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향후 전망
SEC의 요약 공시 수용이 실제 초안대로 자리 잡는다면, 캐나다 은행들은 미국에서 더 넓은 투자자층으로부터 모기지 자금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다만 OSFI가 감정평가 관행을 계속 문제 삼고 부실 위험이 실제로 커진다면, 이 채권을 산 투자자와 캐나다 금융 시스템 모두에 위험이 함께 커질 수 있습니다.
원문: Better Dwell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