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이 물가를 이겼다”는 통념과 달리, 캐나다 가구의 60%는 지난 몇 년간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매년 적자를 내며 빚으로 버텨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캐나다은행(Bank of Canada) 연구는 부의 불평등이 이런 가계 적자의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캐나다은행 연구원 야즈 테라지마(Yaz Terajima)가 내놓은 보고서는 지난 몇 년간 널리 인용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소득이 물가 상승을 앞질렀다”는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전체 평균으로만 보면 이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평균이라는 숫자가 실제 다수 가구가 겪는 고통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입니다.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이 소득을 갉아먹는 동안, 대부분의 가구는 늘어난 생활비를 소득으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매년 부족한 돈을 빚으로 메우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특히 저소득층과 젊은 층에 집중돼 있습니다.
평균 흑자 뒤에 숨은 ‘적자 가구 60%’
전체 평균으로 보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가구 소득은 평균 7,400달러 늘었고, 지출은 평균 6,500달러 늘었습니다. 소득 증가가 지출 증가를 앞서, 가구당 연 900달러 정도의 여윳돈이 생긴 셈입니다. 겉으로는 나쁘지 않은 수치입니다.
문제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물가 충격입니다. 이 시기에는 지출이 소득을 넘어서면서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깎였습니다. 그 결과 2025년 기준 가구당 여윳돈은 연 274달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900달러에서 274달러로 줄어든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얼마 안 되는 흑자마저 소수에게 쏠려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전체 가구의 60%가 생활비 상승을 소득으로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평균이 보여주는 ‘흑자’는 부유층의 큰 여윳돈이 다수의 적자를 수치상 덮어버린 결과입니다.
소득 5분위·연령·주거 형태로 갈라진 격차
소득을 5개 구간(5분위)으로 나눠 보면 차이가 뚜렷합니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는 2025년 기준 연 1만 4,006달러의 여윳돈을 남겼고, 그다음 구간인 4분위도 3,047달러 흑자였습니다. 반면 중간층인 3분위는 연 4,811달러 적자, 그 아래 2분위는 6,805달러 적자로 적자 폭이 가장 컸습니다. 소득 최하위 20%인 1분위도 4,236달러 적자였습니다. 상위 두 구간만 흑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적자인 구조입니다.
연령별로도 갈립니다. 35세 미만 가구는 연 4,249달러 적자로, 유일하게 적자를 낸 연령대였습니다. 소득이 가장 많은 45~54세는 1,781달러 흑자, 55~64세는 169달러 흑자에 그쳤고, 65세 이상은 618달러 흑자였습니다.
주거 형태의 차이도 눈에 띕니다. 집을 소유한 가구는 연 1,817달러 적자로, 세입자(90달러 적자)보다 적자 폭이 훨씬 컸습니다. 최근 높은 가격에 집을 산 가구가 대출 상환과 생활비 사이에서 특히 크게 눌려 있다는 뜻입니다.
보고서는 가구들이 ‘소비 평탄화(consumption smoothing)’라는 이름으로 이 격차를 메우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소득과 물가에 밀려 늘어난 지출 사이의 빈틈을 빚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비를 갑자기 줄이기 어렵다 보니 대출과 신용에 기대는 방식인데, 이는 저소득층과 젊은 층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한국에서도 고물가 시기에 가계가 빚을 늘려 생활비를 감당하는 흐름이 나타난 바 있어, 캐나다의 이번 진단은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높은 가격에 집을 마련한 한인 실수요자라면, 대출 상환 부담과 생활비 상승이 겹치는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향후 전망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소득 증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하위 60% 가구의 적자와 빚 의존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리 부담이 완화되고 실질 소득이 회복된다면 가계의 숨통이 다소 트일 여지도 있습니다.
관건은 부의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원인입니다. 평균 지표가 개선되더라도 그 개선이 상위 소득층에 집중된다면, 다수 가구가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 Better Dwelling
